Kronos Quartet 연주회 감상 (2017.11.21, LG아트센터) 감상문

Kronos Quartet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음악 현대 사중주단으로서,
위촉만 수십곡이고 초연한 현대곡만 수백여곡에 달한다.
그런 유명한 현악사중주단이 내한한다니 안 볼 수가 없었다.
레파토리 중에선 꼭 실황으로 듣고싶은 George Crumb의 'Black Angels'가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인지 연주 며칠 전부터 기대를 잔뜩 했었다.
원래 연주회에 기대 안하고 가는 편인데 이번은 예외였다.
그 기대를 갖고 LG아트센터에 도착했고, 내 자리로 가 착석했다.
LG아트센터에는 딱 1년만에 다시 왔는데, 그새 역삼역과 LG아트센터를 연결하는 지하통로가 완공됐다. 
굳이 바깥으로 올라올 필요도 없고,세상 참 편해졌네.

생각보다 연주회장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차 있었다. 
현대음악은 인지도가 낮아 사람들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만큼 Kronos Quartet 인지도가 대단했던 걸까?

기다리다가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세 명의 노인 남성(바이올리니스트, 비올리스트)과 한 명의 젊은 여성(첼리스트)이 들어왔다.
꽉 찬 관중들은 박수로 맞아주었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1. Aleksandra Vrebalov - My Desert, My Rose (2015)

처음에 현악사중주 내에서 통일되었던 선율이 점차 전개/발전되면서, 이 선율이 점차 분리되고 만다.
그래서 악기마다 따로 놀고, 악기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악기끼리 격렬하게 대립하고, 다른 악기를 밀어내는 듯한 음향이 만들어진다.
그 선율은 중간에 합쳐지는 듯 했더니 나중에 다시 분리된다. 그러다 다시 합쳐진 다음에 갑작스런 종지로 끝난다. 

조성이 강한 현대음악이었지만 지루하지 않고 참신했다. 
악기 간 대립과 조화의 요소를 잘 어무린 듯? 

(여담으로, 이 연주 끝나고 바이올리니스트 한 명이 
'이 악보 자기 사이트에 올라와 있으니 집에가서 연습해보라'고 하는바람에 관중들이 죄다 뿜었다....) 



2. Pete Townshend - Baba O'Riley (Arr. Jacob Garchik. 1971)

원래 록 음악이었던 곡을 현악사중주로 편곡하였다.
현악사중주 뒤에 록 스타일의 배경음악이 깔리고, 현악사중주는 록의 메인 선율을 현대 현악사중주 스타일로 연주한다.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록 음악이랑 현대 클래식이랑 생각보다 잘 맞는구나. 
어쩐지 현대음악 중에서 대중음악 영향을 받거나 심지어 대중음악 편곡한 게 많더니만.



3. N. Rajam - Dadra in Raga Bhairavi (Arr. Reena Esmail, 2015)

전통 인도음악 스타일의 현대음악이다.
전통적인 선율을 현대음악 스타일, 서양 악기로 편곡하여 연주한다. 

문명5 BGM 중 하나랑 너무 유사해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 BGM도 인도음악에서 가져온 거였나? 

여담이지만 첼로 몸통을 여러번 손으로 튕겼는데, 첼리스트의 모습이 많이 의연해 보였다.
젊어 보이는데, 생각보다 연륜이 많는 듯. 보기에 정말 좋다. 



4. Laurie Anderson - Flow (Arr. Jacob Garchik, 2010)

악기 하나하나가 잔잔한 선율을 번갈아가며 전달해가길래 인트로덕션(Introduction)인 줄 알았는데,
그것만 반복하다 곡이 끝나버렸다.

대체 무슨 곡이었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빨리 끝나서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곡이다.


이렇게 자잘한 곡들의 연주회가 끝났고, 연주회 메인인 두 곡이 시작되었다. 



5. Steve Reich - Different Trains (1988)  


원래는 Black Angels 보러 간 연주횐데, 오늘 연주에서 이 곡이 제일 크게 다가왔다.

이 곡은 제2차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를 추모하려 만든 느낌이다.
그게 아니면 곡이 이렇게 슬플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곤 하지만, 이건 그 정도가 아니라 그냥 추모곡이다.

선율 자체는 그리 슬프지 않은데, 곡 형식을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애절하다.



이 곡은 전자음향으로서 기차 소리 + 사이렌 소리 + 특정한 구절을 말하는 인성(人聲) + 현악사중주가 합쳐진 녹음파일이 주어지고, 거기에 실황에서의 현악사중주가 선율을 덧붙여 연주하는 방식이다. 
녹음파일과 현악사중주가 합쳐져서 연주되기 때문에, 이 곡은 실황이 아니면 진가를 느끼기 어렵다.
나는 두 요소의 대조에서 이 곡의 진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30여분의 연주 동안, 기차, 사이렌, 인성, 현악사중주의 녹음파일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미니멀리즘 음악 특성인지 비슷한 음형이 여러번 반복된다. 
그런데, 현악사중주는 녹음파일과 너무나도 조화롭게 연주한다. 
중간에 현악사중주와 녹음파일이 충돌해서 불협화음이 발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실황에서 내가 본 대로라면, 현악사중주의 각 악기들은 다음과 같은 세 방식으로만 연주한다. 

1. 녹음연주 화음, 선율 그대로 따라 하기
2. 녹음연주 화음, 선율 '패턴 일부'만 비슷하게 따라하기
3. 녹음연주 화음과 어울리는, 음 하나를 정해 길게 늘여서 연주하기

이 셋 방법이 네 악기에 별도로 적용되고 이것들이 사중주로 합쳐진다는 게, Different Trains의 실황 현악사중주 파트의 전부다. 
이 느낌이 얼마나 심한지, 현악사중주가 녹음파일을 그냥 베껴 연주한다는 인상이 들 정도였다. 


그게 왜 문제냐고? 이 곡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 

이 곡은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첫 파트는 미국에서 평화롭게 LA와 NY을 왔다갔다하는 기차를 묘사했다. 이 구간에서는 그냥 왔다갔다하는 기차와 안내방송, 기차를 탄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묘사될 뿐이다. 녹음파일 분위기도 기차소리가 좀 시끄러울 뿐 편안하다. 그래서 현악사중주가 녹음파일 그대로 연주되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정겹고 재미있는 효과만 날 뿐이다. 여기 인성으로 나타나는 구절도 다 안내방송과 같은 일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이렌이 울리는 공포의 둘째 파트로 이동한다.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고, 각자 전쟁을 피해 혹은 포로나 유대인으로서 (죽음의) 기차를 탄 걸 묘사한 거다. 상황은 급박해졌고, 녹음파일로 들려오는 음향도 심상치 않아졌다. 잘못하면 다 죽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구절들도 첫 파트와는 달리 전쟁 걱정을 하고 피난가는 사람들의 위태로운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에서도 현악사중주는 녹음파일 분위기 그대로 연주할 뿐이다. 


현악사중주가 그리는 선율도 매우 심각하지만,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 없이 그냥 어두운 분위기를 노래할 뿐이다. 그 속에는 희망이란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이런 부조리한 전쟁 상황에서 그냥 가만히 있는다는 게 말이나 되나? 그냥 한번 쯤은 분위기를 묘사하는 걸 넘어 한번씩 녹음파일과 대적해야 하지 않겠어? 
이 부분을 들으면서 계속 이런 의문을 가졌다. 

안타깝게도 두번째 파트가 끝날 때가지 녹음파일에 대적하는 선율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차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사이렌 소리만 들리는, 죽음의 수용소에 기차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듯한 소리로 이 파트는 끝이 났다. 
정말 소름끼쳤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세상이라니.

세번째 파트에선 전쟁이 끝난 희망찬 유럽을 그리는 듯 했으나.. 여전히 어둡고 희망을 찾지 못하는 음향이 녹음파일로 들려온다. 전쟁의 상흔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이다. 
그 사이로 편안해 보이면서도 불안한, 전쟁으로 잃어버린 것들을 회상하는 구절들이 들려온다. 
이 와중에 현악사중주라는 인간들은 여전히 녹음파일 베끼기나 하고 있다. 전쟁 끝났으면 좀 희망찬 선율을 좀 노래해보지.
어두운 분위기는 도저히 갈 기미를 안 보이다가 F 단조로 종지를 맺는다. 


왜 현악사중주는 녹음파일에 저항(?)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꿈도 희망도 없는, 체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그린 것 같다. 
우리는 세상 속에 존재하고, 그 세상을 넘어설 수 없다.
그래서 첫 파트엔 평온히 기차를 타고, 둘째 파트엔 절박하게 혹은 죽음을 기다리며 기차를 타고, 셋째 파트는 해방된 듯 하나 불안하게 기차를 탈 뿐이다. 

그런 쓸쓸한 현실을 고발하는 게,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위한 애도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현실고발로 보기에는 그 부분이 너무나도 슬펐기 때문이다.
말로는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실황으로 듣는 사람에겐 굉장히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명곡이 끝나고 잠시 인터미션을 가졌다.



6. George Crumb - Black Angels

격렬한 불협화음 트릴, 두드리기, 타악기, 고함, 유리잔 연주 등 온갖 특이한 연주방식이 동원되는
현대음악의 명곡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사회상을 그렸다고 한다.

그 특이한 연주기법 탓일까.
인터미션 나갔다 와보니 무대가 굉장히 특이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첼로 연주자 자리만 위로 올라가 있었고, 원래대로 반원 구도가 아닌 일직선으로 줄을 서서 네 주자가 연주했고,
심지어 위에서 내려온 줄에 악기를 걸어 놓았다. 
이건 무슨 굴비냐. 악기를 줄에 매달면 숙성되게?   


이 곡은 출발-부재-귀환의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이랑 배경을 알고보니 이렇게 해석이 된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간다 - 
그곳에는 황폐해진 세상이 있었고, 천사들은 이를 안타까워하며 의식을 거행한다 - 
그리고 다시 하늘로 복귀한다.

성(聖)스러운 요소도 그렇고 뭔가 애도하는 느낌이 강하게 났다. 이것도 추모곡이었을까. 

첫째 파트인 출발은 시작부터 고음의 격렬한 불협화음 트릴로 시작한다. 
한 연주자만 그래도 미치겠는데, 넷이 동시에 지랄하니 귀청 나갈 지경이다. 시작부터 강하다.
그러더니 분위기가 조용해진다. 잔잔한 추모 분위기의 선율이 나온다... 싶더니
갑자기 주자들 한 명 한 명씩 악기를 버리고 나가서 타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다시 악기를 불잡고 연주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악기를 불잡으면서도 손에 타악기를 쥐기까지 한다. 

천사들도 참 거창하게 내려오네.


그리고 둘째 파트가 시작되고 계속 연주하는데, 이젠 연주하면서 알 수 없는 구호를 외쳐댄다.
여성 연주자(첼리스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면서 타악기도 가끔 친다.
대체 뭘 말하려고 한 걸까. 천상강림한 천사를 향한 의식(儀式)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몇몇 연주자들이 뒤에 가서 배경에 있는 식탁보를 걷고 유리잔을 연주하기 시작된다.
원래 자리에 앉아서 연주하는 주자들은 각자 선율을 연주하고.

너무나도 성스러운 광경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이던지, 마치 옥음(玉音)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는 그저 천상의 소리였다. 
이건 천사의 목소리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될 정도였다. 그래서 곡 제목이 Black 'Angels'였나....
(Black한 Angels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지는 둘째치고)

천사들이 이 세상을 참 안타까워 하는구나..


마지막 세번째 파트.
이 곡의 시작을 알린 귀청 떨어지는 트릴이 반복되더니,
잠시 잔잔하게 추모선율을 연주하다, 성스러운 유리잔 소리가 은은히 울려퍼지면서 곡이 끝났다. 

올라갈 때도 거창하지만, 천사들은 뭔가 슬픔과 애정이 느껴지는 선율을 노래했다.
이 세상에 연민을 느끼지 않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그 선율...


현대음악이 이렇게 스토리 강한 예술작품일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재미있는 현대음악은 많았지만, 이렇게 한 폭의 영화작품같은 현대음악은 처음이었다. 
스토리도 최고고, 캐릭터들의 연기도 좋고, 중간중간의 CG도 최상급인 영화가 연상된다.

다 듣고 나니 뭔가 씁쓸해졌다.
곡이 만들어낸 강렬한 음향의 뒷맛이 쓰게 남는다.



관중들의 열혈한 환호 속에서 사중주 단원들은 퇴장했다.

연주회가 끝났지만, 나는 사인회에 참여해서 명연을 보여준 Kronos Quartet에게 감사를 표하고서야 
LG아트센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나서기엔 뭔가 섭섭했다.
그 정도로 이번 연주회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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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 특성상 아무리 연주가 이상해도 원래 곡이 그러려니 생각하기 때문에, 
연주를 평가하기보다는 곡을 평가하는 듯한 리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리뷰도 나쁘진 않다. 
왜나하면 현대음악 연주회단이 레파토리를 잘 선정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이하고 괴팍한 곡이 많은 현대음악 중 좋은 곡을 선별한다는 것은 높은 음악적 조예를 요하는 일이다.
적어도 Kronos Quartet은 이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음악 듣고 이렇게 큰 감명을 받은걸 보면 Kronos Quartet은 연주 수완도 대단한 편 같다.
특히 첼리스트 Sunny Yang씨. 사중주 연주를 하드캐리한 거 보고 반했다. 
기교도 뛰어나고, 곡에 열중하는 모습도 멋있고,
혼자 사중주에서 젊고 여성인데도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한다.

Kronos Quartet 덕분에 굉장히 감명깊은 연주를 들었다.
앞으로 이 현악사중주가 잘 되길 기대할 뿐이다. 

p.s. LG아트홀은 콘서트 전용홀이 아니다.
그래서 더 다채롭게 무대를 꾸미고 조명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게 이번에 연주한 곡들의 분위기에 잘 맞아떨어졌다. 
연주단이 LG아트홀을 고른 건 신의 한 수인 듯. 

p.s.2 공교롭게도 작년 이맘때(11월 24일) 이곳에서 피에르 로랑-에마르가 연주한 현대음악들을 들었는데,
오늘도 여기서 현대음악을 듣게 되었다. 
우연 하나 참 신기하다. 덕분에 작년 감회만 새록새록...

요즈음의 페미니즘 잡담

예전의 페미니즘 논쟁에선 독박가사육아, 성범죄처럼 디테일은 논란이 있어도 큰 틀에선 어느정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젠 한국의 가부장제는 여자를 보호하지도 않는 여자에 대한 노예제라는, 진지하게 반박해야 하나 싶을수준의 망상이 나오는구나.

한두명만 주장하는 것도 아니라 더 골치아프다. 어쩌다 페미니즘이 이 지경까지 막나가나...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한국의 가장 큰 문제점. 학문적 이야기

개인적으로 한국의 언론이나 지식인, 책들의 주장을 볼 때마다 답답할 때가 많다. 
사실관계가 틀리거나(세부 근거도 아니라 핵심 근거도 종종 틀린다), 분석이 1차원적 수준에 머무른다던가, 논리 비약과 오류가 너무 심하거나, 자기 선입견과 주관적 경험을 검증도 없이 기정사실화 한다던가, 기초적인 개념도 모르고 전문영역의 글을 쓴다던가, 동네 훈장님 수준의 무의미한 주장만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는데... 


한국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문제해결에 있어 규범적이고 당위적인 판단이 앞서지, 실증적이고 엄밀한 태도가 너무 부족하다. 

물론 일반인들이야 그런 태도를 훈련받을 일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해외 선진국들의 일반인들이 한국보다 별반 낫다고 생각하지도 않고(각종 음모론, 포퓰리즘에 놀아나는 걸 보면)... 
하지만 한국은 사회지도층까지 실증적이고 엄밀하지 못하니 참 한숨만 나온다. 내가 워낙 엄밀하고 꼼꼼한 성격을 가져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언론 수준 문제는 많은 전문가들에게 지적 받는 사안이니 내 불평이 헛소리까지는 아닐 것 같다.

두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구의역에서 근무하던 청년 하나가 열차사고로 죽은 적이 있었다. 
그때 한국 언론과 지식인들은 모두 단기적 이윤만 중시하던 서울메트로, 방만한 낙하산 경영, 한국 사회의 안전불감증 탓만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문제는... 분석이 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거다.
한국 사회가 단기적 이윤만 중시하고 안전을 무시한다는 분석은 맞지만, 그렇게 따지기엔 사고가 난 서울메트로는 관련 문제가 많고자잘한 사고가 잦았지만, 같은 한국 기업인 도시철도 5678은 그 반대였다. 한국 사회만 탓하는건 이 두 회사가 차이가 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본 언론기사들 중 이 두 회사를 비교/대조한 기사가 없었다. 

원래 사고원인 규명하려면 사고와 관련된 사건, 배경 전부를 추적해 엄밀히 분석하는 실증적 작업이 필요한데, 거기에 관심가진 지식인이나 언론들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잭스 페로 저)'라는 미국 저자의 책을 읽은 경험이 있어서 그 문제를 더 크게 느꼈다. 사회학, 공학, 기술 등 안전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안전사고는 어떤 패턴으로 왜 일어나는지 분석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250517의 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만 봐도 무슨 의미인지 짐작갈 것이다) 
슬프게도 한국의 언론과 지식인 중 이 학자의 학문적인 태도를 반만이라도 따라간 사람이 없었다. 세월호 때도 구의역 참사 때도... 
그러니 사고가 매번 반복되는 거지. 뻔한 수준의 소리만 반복하고, 사회를 개선시킬만한 수준의 분석은 하지도 못하니. 


또 하나는, 한국어에 부정적인 표현이 발달하고 한국인들 중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걸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부조리로 파악한 거다. 이 이론이 성립하려면 
'인간은 주어진 조건이 똑같을 때 남과 완전히 똑같이 인식한다'
'한국이 타 국가에 비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부조리가 심한 편인 게 사실이다',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혼란이 심했던 나라 국민들의 언어와 심성이 더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는 세 가지 명제가 증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 쓴 사람은 이 세 가지를 기정사실화해서 검증도 안하고 넘어갔다. 자기딴에는 너무 당연한 사실인 것 같아서 검증을 생략하고 넘어간 것 같은데, 그런 태도는 개인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가설 수준으로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주장하려면 책임을 져야지. 


그 외에도 부동산과 생산물 원가 관련한 헛소리, 교육 관련한 뻘소리, 청년 담론이라는 이름의 망상 등 많은데 넘어가자. 

이런 일들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보니, 한국 언론과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좀 많이 생겼다. 
물론 외국 언론이나 지식인이라고 해서 수준이 다 높은 건 아니고, 한국처럼 3류 저질 언론이나 지식인도 분명 있다.

하지만 거긴 적어도 '괜찮은'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진짜 매사를 거시적 차원에서 훌륭하게 분석한다. 
The Economist, New York Times, Wall Street Journal 읽어보면 정말 주옥같은 글들 많다. 물론 이쪽 언론이라고 100% 완벽하진 않지만, 적어도 한국 언론에 실망한 나에겐 전세계 역사와 사회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분석, 엄밀한 실증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는 그저 감탄의 대상이다. 한국은 그 정도 수준의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거의 없다. 

물론 한국도 전문 분야에서 지식인들은 괜찮은 주장을 하지만, 적어도 다들 숟가락 얹으려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논하는 수준은 도저히 높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엄밀함의 문제가 신진세대가 등장하면서 나아지고 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 개선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다. 페이스북에서 활동하는 젊은 기자나, 박사들 글 봐도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경우가 많다. 오히려 레디컬 페미니즘이 유행하면서 몇몇 주제의 엄밀함은 급격히 악화일로고.

개인적으론 이 현상을 심각하게 본다. 아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진 않았지만, 만약 내가 이민을 가 한국에 안 돌아온다면, 그 이유 중 '한국의 이런 엄밀하지 못한 지식인 풍토에 실망해서'가 꼭 들어갈 것 같다. 학계 진출을 희망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못 넘어갈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희망하는 대학 교수들과 학과가 거기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게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에서 성평등 문제 이야기할때 이야기가 꼬이고 산으로 가는 건 학문적 이야기

1. 한국은 분야별로 성평등 수준 차가 너무 크다. 예를 들어, 한국은 이제 육아와 교육에 있어서는 성차가 거의 없으며, 여아선호가 일어나고 여성들이 공부를 잘 하는 등 이쪽에선 여자가 유리하다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그러나 기업의 유리천장 문제와 가사/육아 분담에서의 성차는 아직도 심각하다.

2. 세대별로 각각 다른 시대를 살아 다른 이력을 지녔기에, 같은 2017년에 사는데도 각 세대들의 경험이 너무 차이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세대를 퉁치려는 이론을 만들면 평균의 함정이 생겨나게 된다. 한국은 50대 부부의 여아낙태 경험과 30대 부부의 여아선호 경험이 공존한다. 한국은 사회변화가 매우 빨리 진행되었기에 더 그렇다.

3. 한 세대 기준으로 봤을 때, 남녀의 상대적 유불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크게 변한다. 2017년 기준으로, 여성은 취직 전까지는 유불리를 따질때 남성보다 크게 불리하다고 보긴 어렵다. 물론 외모품평에 시달리고 치안에 대해 남성보다 불안을 크게 느끼지만, 교육성취나 군복무처럼 남성보다 여성이 유리한 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여성은 취업준비 때부터 불리해지기 시작하고, 직장생활하면서 그 불리함이 점차 커지다가, 결혼과 출산을 겪은 후엔 확실하게 남성에 뒤쳐지게 된다.

4. 성평등과 관련해 빠르게 사회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변화 속도는 분야별로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유리천장 문제는 충분히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지만, 경력단절이나 임금격차 문제는 진전이 상대적으로 더디다. 


이렇기 때문에 한국의 성평등, 젠더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굉장히 길고 복잡하고 양가적인 이론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론에 만족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요즘은 여성상위시대라고요!' '남성은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엄청난 특권을 얻는다고요!' 하고 징징대는 인간들이 이 이론에 만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워낙 매사를 단순무식하게 생각하려는 인간들이니까. 문제는 성평등 담론에 그런 부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요즘 성평등 문제로 논쟁하면 논쟁이 산으로 가거나 인신공격으로 끝나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그게 위에서 말한 성평등 문제의 복잡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나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아직까지는 여성으로 사는 게 불리하다곤 생각한다. 그렇게만 말하기엔 현실이 너무 복잡해서 문제일 뿐.


요즘 이라크와 스페인에서 분리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걸 보면 학문적 이야기

한국이 단일민족국가라는 게 이런 면에선 축복인 것 같다.

물론 한국인이 완벽한 단일민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인식하는 수준에선 단일민족에 가깝다. 
여진족이나 몽골인 같은 경우도 있지만, 몇백년을 살아오면서 한국인으로 수렴되었다.

그리고 한국은 인구 구성을 봐도 굉장히 단일하다.
98% 이상이 한국인으로 나온다.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자국민의 98% 이상이 특정 민족이고, 다른 민족은 거의 외국인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나라 거의 없다. 
일본과 북유럽 정도나 그럴 것이다. 


물론 단일민족국가임은 어느정도 역사적, 지리적인 면을 많이 타기 때문에 
그 자체를 자랑거리라 보긴 어렵다. 노력해서 만들지 않은 면도 크기 대문이다. 
학살이나 강제추방이 아니고서야 인종구성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어려우니까. 
그리고 단일민족이라는 게 꼭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자칫 타 민족, 타 국가에 대해 배타성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를 운영하고 발전하는 데 단일민족국가임은 큰 이점이 된다. 
왜나하면 타 부족들과의 갈등이 분리주의, 인종 폭동, 심지어 내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일민족국가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은 생각하지 힘들지만, 이거 은근 치명적이다. 


실제로 이걸 제대로 못해서 망가진 나라들이 제법 존재한다.
심지어 선진국들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바스크와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벌어지는 스페인(카탈루냐에서 독립운동 투표가 곧 벌어질 예정이다),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이 벌어지는 영국 등이 그렇다.
지금이야 잠잠해졌지만 한창 심할 땐 공공 장소, 지도자를 상대로 테러까지 벌여 정신 없었다.
지금은 IS나 벌일 짓을 자국민 분리주의 운동집단이 벌인 것이다. 

하물며 선진국도 이 정도인데, 개발 도상국들은?
인종 폭동, 상시적 분쟁은 물론 내란으로 비화된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인도는 잊을 만하면 인종 폭동이 벌어져 수백 수천 명씩 죽어가며,
터키, 이라크 등에서 쿠르드족은 차별은 물론 여러 번 학살을 받았다.
(얼마 전 이라크 쿠르드 자치지역이 국민투표에서 90%의 찬성률로 독립을 결정했다)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은 테러집단 봉쇄를 목적으로 강간, 고문, 방화, 학살당한다.

레바논, 보스니아, 르완다, 이라크, 시리아는 그 중에서도 극단적 케이스로,
부족 간 치열한 전쟁이 벌어져 나라 전체가 생지옥이 되어 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강간당하고 난민이 되었다.
이들 국가의 평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한국 사회가 만약 다민족국가였다면, 이렇게 안 됐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이렇게 무궁무진하게 발전한 나라가 설마 내전까지 났을까... 싶지만
이 발전 자체가 보장되지 않았을 수 있다.
한국은 50~60년 전까지만 해도 꽤 가난한 나라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때 인프라, 사회적 자본 수준을 감안했을때 레바논, 보스니아, 르완다, 이라크, 시리아의 길을 안 걸었을 거란 보장이 없다.


물론 다민족국가라고 꼭 나쁜 건 아니다. 
미국 같은 경우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잘 돌아가고 있다. 
오히려 다민족 특유의 장점을 이용하고 세계적인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여, 단일민족국가를 더 유지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이 단일민족국가라는 사실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말한 대로, 적어도 인종 갈등이나 분리주의 문제로 앓는 일은 없었으니까.


민족주의 타파고 다문화고 다 좋은데,
그 전에 단일민족국가와 다민족국가의 장단점을 엄밀하게 비교해야 한다.
둘 중 한 쪽을 선택할 때, 각각 어떤 이점이 있고 문제점이 있을지는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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