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에 새 블로그를 팠다. 잡담

http://philomenabin.tistory.com/

당분간은 이글루스에 머물러 글 계속 쓰겠지만, 
티스토리가 진지한 글 쓰기엔 좋은 사이트 같아서 그쪽에 블로그 하나 만들었다. 

왠만한 글들은 두 블로그에 다 올릴 계획이다. 다만 몇몇 글들은 한쪽 블로그에만 올릴 수도 있다. 

내 블로그를 보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공지를 해 본다.

통계로 본 무슬림들의 사상과 가치관 - 1. 샤리아와 자살테러 학문적 이야기

참고: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블로그에 있는 http://philomenabin.tistory.com/31 게시글을 퍼온 것이다. 
원래 한 글을 여러 사이트에 올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워낙 중요한 주제라 생각되서 여기에도 한번 올려본다. 

IS, 이슬람 테러리즘, 난민 사태로 이슬람 종교 자체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슬람이 전근대적이고 원리주의적이며 불관용스럽다는 인식도 크게 늘었고.
그래서 무슬림들은 종교, 문화, 가치관 이슈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라는 차원에서 한번 올려본다. 

퓨리서치의 한 여론조사(http://www.pewforum.org/2013/04/30/the-worlds-muslims-religion-politics-society-overview/)가 이 주제를 정말 포괄적으로 연구하였다. 이슬람 사회에 관심 많은 사람에게는 정말 보석같은 연구이다. 
퓨리서치는 미국에서 제일 공신력 있는 사적 통계기관이니 믿을만하다.  

참고로 이 조사는 2013년 시행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여론이 달라졌을 수 있음에 유의. 


1.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대한 신념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 개념이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이 보고서에 나온 정의를 인용해본다. 

Sharia, or Islamic law, offers moral and legal guidance for nearly all aspects of life – from marriage and divorce, to inheritance and contracts, to criminal punishments. Sharia, in its broadest definition, refers to the ethical principles set down in Islam’s holy book (the Quran) and examples of actions by the Prophet Muhammad (sunna). The Islamic jurisprudence that comes out of the human exercise of codifying and interpreting these principles is known as fiqh. Muslim scholars and jurists continue to debate the boundary between sharia and fiqh as well as other aspects of Islamic law.

샤리아, 혹은 이슬람법은 결혼과 이혼에서부터, 상속, 계약과 형사처벌에까지 삶의 거의 모든 면을 도덕적이고 법적으로 인도한다. 샤리아는 넓은 의미에서는 이슬람의 경전 쿠란에 실린 윤리적인 원칙과 무함마스 사도에 의한 행동의 전범(순나)을 가리킨다. 이러한 원칙들을 성문화하고 해석하는 인간적인 활동에서 나오는 이슬람 법학을 피크흐(fiqh)라고 한다. 무슬림 학자들과 판사들은 이슬람법의 다른 면과 함께 샤리아와 피크흐의 경계를 논의하고 있다.


1) 샤리아는 순수한 신의 계시인가? 



(연두색) 신의 언어에 근거하여 인간이 발전시켰다. (진초록색) 신의 계시이다.

코소보, 알바니아 정도를 제외하곤 샤리아를 순수한 신의 계시로만 보는 의견이 주류다. 
인간이 발전시킨 거라는 의식은 덜하다. 


2) 샤리아엔 몇 개의 해석이 존재하는가?



(연두색) 다중적인 해석 (진초록색) 단일한 해석

대부분의 국가에서 샤리아는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해석되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다.
이라크, 모로코, 튀니지, 터키 정도가 예외다. 



3) 샤리아가 국가의 공식적인 법이 되어야 하는가? 



중앙아시아나 남동부 유럽 지역을 제외하면,

무슬림 절대다수가 샤리아 법제화를 옹호한다. 
샤리아와 이슬람은 현실적으로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



4) 기도하는 횟수로 따져본 샤리아 법제화 지지율




보다시피 하루에도 여러 번 기도하는(pray several times a day) 무슬림이
덜 기도하는(pray less often) 무슬림보다 샤리아를 더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샤리아는 신앙심이 강한 무슬림들이 더 지지한다는 통념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5) 샤리아는 무슬림에게만 적용되어야 하는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야 하는가? 



(연두색) 무슬림들에게만 (진청색) 모든 사람들에게

나라마다 다르다. 무슬림들만 적용하자는 의견이 주류인 나라도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하자는 의견이 주류인 나라도 있다. 

다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무슬림들에게만 적용하자는 의견이 많은 듯. 



6) 종교판사가 가정, 재산권 분쟁을 중재해야 하는가? 



(참고로 이 비율은 샤리아 법제화를 옹호한 무슬림에서만 따로 조사한 비율이므로 해석에 유의. 
전체 무슬림의 비율이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동의율이 높다. 
샤리아 지지 = 종교의 가정, 재산문제 관할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7) 절도 등의 범죄에서의 신체형을 지지하는가?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신체형은 손목 절단형(절도)을 의미한다.

(이 비율도 샤리아 법제화를 옹호한 무슬림에서만의 비율이므로 해석에 유의. 
전체 무슬림 비율이 절대 아니다!)

과반을 안 넘는 나라가 더 많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30~60%의 무시못할 신체형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8) 간통 범죄에서 투석형을 지지하는가? 



(이 비율도 샤리아 법제화를 옹호한 무슬림에서만의 비율이므로 해석에 유의. 
전체 무슬림 비율이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30% 이상이라는 무시못할 비율 지지한다. 과반 넘은 나라도 꽤 있다.



9) 개종자에 대한 사형을 지지하는가? 



(이 비율도 샤리아 법제화를 옹호한 무슬림에서만의 비율이므로 해석에 유의. 
전체 무슬림 비율이 절대 아니다!)

조금 극단적이라 생각했는지 방금 몇개보다는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그래도 남아시아-중동지역에서는 무시못할 지지율을 보여주는 중. 


10) 국법이 샤리아를 얼마나 준수하는가?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타지키스탄, 이라크, 모로코 정도를 제외하면 아니라는 의견이 절대다수다.

이슬람 국가들의 법률도 샤리아 추종자들은 만족시키지 못할 수 있다.
이들의 법률은 더 샤리아화될 잠재력이 있는 셈. 



11) 국법이 샤리아를 잘 따르지 않는 건 좋은 일인가? 



그럼 안 따르는게 좋은 일이냐고도 물었는데,

역시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쁜 일이라는 입장이 다수였다.
무슬림들의 샤리아에 대한 갈망이 강하다는 걸 느꼈다.



2. 종교와 정치

다른 내용은 질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뺐고, 자살폭탄 테러를 논한 설문조사 하나만 올려본다.

1) 이슬람을 방어하기 위한 시민을 상대로 한 공격(즉 자살 테러)이 약간이라도 옹호될 수 있는가? 




어느 국가도 과반이 넘지 않았으며 소수에 머물렀다. 
자살 폭탄테러는 무슬림에게도 꽤나 극단적으로 인식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아주 없지는 않다. 
제일 낮은 아제르바이잔도 1%, 왠만한 국가에서는 5%-15%. 아프간이나 팔레스타인같은 지역에선 40%까지 간다.
소수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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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설문문항이 많아 나머지 내용은 2부에 올리겠다.


요즘 사회비판들 보면서 불만인 것 잡담

바로 사실만 나열해도 충분히 깔 수 있는 사안을 
왜 굳이 과장,왜곡 심지어 조작하면서 까는 풍토다.


한국 노동시간 긴 거 솔직히 사실이다.
실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취업 쉽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었던 80~90년대를 그리워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여자라는 이유로 겪는 불합리한 불이익이 있는 거 맞다.
한국 자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한국 현역병에 대한 처우 솔직히 너무 열악하다.

이런 테제들은 통계와 사례들로도 충분히 도출해 낼 수 있다. 
이런 사회문제들 비판하는 덴 공개된 자료만으로도 깔 거 무궁무진하다.
신빙성 있는 근거로 충분히 설득력을 갖고 비판할 수 있다. 
이렇게 까도 사람들 많이 공감할 것이다.


왜 이런 문제들을 굳이 과장, 왜곡, 조작하면서까지 까야하냐고.


외국엔 장시간노동이나 야근이 '아예 없다'고 하질 않나.
현재 생활 수준이 80/90년대보다도 낮다고 하질 않나.
한국의 여성인권이 인도보다도 낮고, 임금격차 36% 전부를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덜 받는다'고 해석하질 않나.
한국 자살률이 높은 걸 청년 실업으로 해석하질 않나.
타 징병제 국가들은 죄다 최저임금 맞춰주고 병영부조리가 없다고 하질 않나.
(참고로 위 다섯 주장은 모두 '확실히' 틀렸다)


더 웃긴 건 저 주장들의 과장, 왜곡, 조작을 지적하면 
'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쓰잘데기없는 트집이나 잡는 놈'으로 취급한다는 거다.
그리고 내 의도를 왜곡한 맹렬한 비난들이 이어진다. 
심지어 나는 저 주장의 큰 틀에는 동의하는 사람인데도 비판을 거부하는 셈이다. 


아마 주장을 자극적이고 주목 잘 받도록 만드려고 이러는 것 같은데.
과장, 왜곡, 조작이 일상시되는 풍토는 비평의 수준을 낮춘다.
어쨌든 당신들이 이야기한 건 '사실'이 아니게 되니.
그러다보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대한 논쟁이 아닌,
주장의 사실성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만 촉발시킨다.

원래 사회 비평의 의도와는 백만광년 멀어진 반응이다.
이것이 당신들이 원하는 반응이었는가?


요즘 사회비평 글들은 이런 식의 글들이 너무 많다. 
심지어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딴식의 헛소리를 자꾸 접하다보니 점점 짜증이 쌓인다. 

당신들의 과장, 왜곡, 조작하는 태도는 사회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발 자중하길 부탁한다.

한국 지식인들이 자국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 학문적 이야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식은 거칠고 소홀하며 허위에 가득 차 있고 태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국의 역사에 대해서조차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상(=한국)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국을 분석하는데 당위와 연역과 도덕과 외과수술적인 언설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내재적으로 자국을 이해하려고 하는 소수의 성실한 언설은 부당하게 무시되거나 경멸되고 있었다.


- 오구라 기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조성환 역, 모시는 사람들, 2017, p.251-252


이 점에 유의하면서 한국의 (경제학, 사학) 연구자들이 보이는 공통의 결함을 지적하자면, 그들은 한국의 경제체제를 제약하고 있는, 그것의 비교적 특질을 깊숙이 각인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역사로부터 물려받은 비공식적 제도와 규범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적절한 관심조차 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중략)... 한국경제의 유형적 특질에 대한 국내의 논의가 경험적이라기보다 규범적이며, 전체적이라기보다 부분적이며, 심층적이라기보다 표피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음도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 이영훈 엮음, 『한국형 시장경제체제』,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p.25


(자칭) 지식인들이 쓴 한국사회 비평을 보면서 한숨나왔던 적이 많았는데, 그 이유를 위 두 구절이 너무나 잘 요약한 것 같다. 둘이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거 보면, 나와 비슷한 감상을 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보기에, 한국 지식인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How the world should work)'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How the world really works)'는 별로 논하고 있지 않다. 설령 논하더라도 그 수준은 별로 높지 않다. 개연성, 설명력이 떨어지거나, 근거로서 든 예시들의 사실관계가 틀려먹은 경우가 허다하다. 

'왕은 인의에 기초하여 정치를 하여야 한다',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인 판단으로 구성된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일까.



물론 과거 한국은 빈곤과 억압으로 점철되었기에 당위적인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한국은 부패한 정치인, 빈곤, 독재 등의 거대악이 존재하는,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사회였으니. 그 요구를 정치인들이 받아들인 덕에 한국 사회가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처럼 거대악도 없고, 복잡한 사회에서 당위만 운운하는 건 문제다. 당위에 사로잡히면, 사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 소홀해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 십상이다. 또 자기들끼리는 통할지 몰라도 남이 보기엔 터무니없는 도그마에 빠지기 쉽다. 이는 세상을 당위에 맞게 개선시키는 데 방해만 될 것이다. 



이제 한국 지식인은 당위를 일단 제쳐놓고, 자국을 엄밀하고 실증적인 방식으로 연구할 때가 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한국을 연구해볼 생각이다.  


미국 대학가의 정치적 올바름 현실 [이코노미스트 번역] 시사잡담

https://www.economist.com/news/united-states/21728688-reed-college-oregon-shows-left-v-left-clashes-can-be-equally-vitriolic-arguments

(미국) 대학가에서 표현의 자유 논쟁은 좌우 대립이 아니다

오리건의 Reed College가 보이듯 좌좌 대립도 좌우 대립만큼이나 독설적이다

오전 9시에 대학 생활의 첫 수업인 Humanities 110 강좌 강의실이 신입생들로 꽉 차있었다. 프로그램의 수장 Elizabeth Drumm은 목소리를 울려대며 몇몇 발언으로 강의를 시작했했다. 몇몇 강사들이 패널 토론이 벌어지는 곳으로 이동할 무렵, 세 시위자가 강의장 양 끝에서 출몰했다. "우리는 이 수업이 유럽중심적이기 때문에 항의합니다" 한 시위대가 말했다. Drumm은 "여기는 수업실이고 이런 행동은 부적절하다"며 즉각 강의를 취소했다. 이 행동은 Oregon의 Portland의 인문교양대학[주- Liberal Art College : 학부중심대학으로서 연구보다는 학부생들에게 교양으로서 인문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을 가르치는 교육을 중시하는 대학들] Reed College의 다음 학기에서도 반복되었다. 


지난 학기엔 수십명의 학생들이 카드보드 사인을 들고 강의장 앞에 앉아 일주일에 세 번 열리는 강의를 계속 점령했었다. 그들은 강의안에서 비백인의 목소리가 없다면서 종종 입을 막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심지어 학기 시작 전에 대안적 커리큘럼을 갖고 강의 무대에서 신입생들을 가르친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해엔, 학장은 강의가 시작되기 16분 전 학교의 반대 정책(dissent policy)의 윤곽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이메일에서 대학 당국은 잠재적 충돌에 맞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Reed College 학생들은 Princeton Review's의 382개의 인문교양대학 중 가장 진보적이고(liberal) 두 번째로 공부를 많이 하는 대학교로 뽑혔다. 그런 좌파 정치와 진지한 학문의 결합은 작년에 대학 당국, 학생, 교수들을 위협하는데 힘썼음이 드러났다. 


시위대들은 인문학 프로그램에 나온 학자들이 압도적으로 남성, 백인이 많아 세계의 대단한 문명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인종차별적이라고 항의한다. 그들은 흑인들이 학교의 1,400명 중 3% 미만만 차지함을 지적하고, 대학 당국이 흑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행하지 않았음을 언급했다. 그들의 목표와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학생들의 적절한 비율이 등장했다. 스스로를 혼혈이고 성소수자로 정의한 조교수 Lucia Martinez Valdivia은 시위대들에게 지난 겨울에 Sappho[주: 레즈비언인 걸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 문학가]에 대한 강의 도중엔 시위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교수는 그녀가 PTSD로 고통받았으며, 반대에 직면하면서 강의를 전달할 수 있을지 의문만 생겨났다고 언급했다. 처음에는 시위자들은 그들은 전략을 바꾸어 검은 옷을 입고 강의실에 조용히 앉아있기로 공지하였다. 시위대들은 그녀의 강의 끝에 교수를 야단쳐 울게 했다. 


시위대들은 Valdivia 교수가 수많은 모욕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인문학 강의안에 반대하지 않아 백인 우월주의적인 원칙들을 용인한 '인종의 배신자'였다. 그녀는 티셔츠를 입으면서 '시는 문학이다'는 흑인 속어를 도용했기 때문에 '반-흑인적'이엇다 그녀는 Trigger Warning[주- 강의중에 다루는 문학 작품에 성범죄, 인종차별, 폭력 등의 내용이 나올 때 해당  트라우마를 안은 사람들을 위해 작품에 해당 내용이 등장한다고 미리 공지함]이 성적인 트라우마를 줄일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장애인 차별자(ableist)'였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학생들의 억압의 감정을 의심케 했기 때문에 '가스라이팅 시전자(gaslighter)'였다. 


그녀는 나중에 블로그에 "나는 이런 학생들에게 모욕감을 느낀다"고 토로하였다. "나는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강의 심지어는 이런 이슈들을 언급하는 글들을 가르치기가 무섭다.. 특히 학생들이 역사성이나 객관적인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그들은 이런 요소들을 백인 시스[주-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젠더와 내가 생각하는 젠더가 같은 경우]헤테로[주-이성애자] 가부장제의 도구로 폄하한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런 강의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몇 주 후, 대학은 영화에 트랜스젠더들의 동정적인 자화상을 처음 다뤘다는 사유로 널리 호평받은 "Boys Don't Cry"의 젠더-유동적인[주 - genderfluid: 고정적인 젠더에 구애받지 않고 남녀를 자유로이 오가는 성정체성] 감독 Kimberly Peirce를 초청했다. 시위대들은 그 행사를 홍보하는 포스터들을 찢어버렸고 그들의 고유 포스터를 붙였다. "시스백인 개x끼(bi*ch)는 꺼지라'고, "너의 트랜스젠더 혐오는 꺼지라"고. Peirce 감독이 말하기 시작할 때, 시위대들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소리를 질렀다. 그들이 느끼기에 그녀는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폭력을 이용해 이득을 벌어들이고 있었고, 영화에 비-트랜스젠더 배우인 Hillary Swank를 기용했기 때문이다. 학과장 Nigel Nicholson은 이번 학기의 학생들을 "발화자를 고발하려는 질문들을 하고 있었다며, 이건 대학이 아니라 마치 재판장 같았다"며 술회했다.


이 해 초에 시위대들은 대학 당국에 흑인들을 더 많이 끌어들여 재학시키기 위해 노력을 다하라는 합리적인 요구를 하였다. 그리고는 교수들을 향한 고충을 판단하는데 학생들의 역할을 확장시키고, 대학 전반에 인종-민감성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포함한 괴상한 요구들을 하였다.



테르미도르 반동[주-프랑스 대혁명 후 등장한 혁명파 폭군 로베스피에르가 반대파에 처형된 사건. 급진세력의 오만과 독선에 온건세력이 맞선 행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 같다] 


많은 학생들은 대학이 반대되는 의견들을 표출하기 두려워지는 공간이 되어간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시위자들의 견해에 SNS로 반대하는 학생들은 운동가들에 의해 인종차별주의자로 비난받는다. 새로이 입학한 한 외국인 대학생은 그녀가 대학에 자유지상주의자[주- 경제적 자유주의, 사회문화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 모임이 없냐고 미래 동기들에게 묻자 조롱을 받았다. 백인 학생들은 다른 학생로부터 수업에서 백인들은 인종과 정체성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온다며 불평한다. 한 학생은 SNS에 시위자들에 반대되는 의견을 올리자, 그의 수업 동기는 그가 일하는 대학 서점에서 해고토록 하겠다며 위협했다. "의견의 표현이 제한되었고, 다른 관점을 언급하는 학생들에게는 적대적인 환경"이라고 2학년 Yuta Kato는 언급했다.


그러나 이번 학기의 Reed College엔 반혁명의 신호들이 보인다. 무슬림학 교수들은 시위자들 앞에서 강의기를 거부했고, 150명의 학생들이 듣는 수업을 나무 밑에서 가르쳤다. 몇몇 신입생들은 시위자들의 목소리를 묻히도록 소리쳤다. 한 흑인 학생은 그들을 이렇게 타이렀다. "여기는 강의실이지 시위장이 아니다. 지금은 배우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1학년 학생들이다" 교수의 나머지 연설은 박수 소리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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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하자는 지꺼리인가? 저런 인간들이 사회 진출하면 참 볼만하겠다. 

자기의 의견만이 제일이라고 우기는 소아병 환자들이 왜 이리 많아졌냐.


정말 트럼프가 당선되도 이상할 게 없는 환경이었구나. 

Oso님 블로그에서도 봤지만, PC 문제가 정말 심각하긴 하다.


p.s. 이글루스엔 주 기능이 없어서 아쉽다. 처음 봐서는 이해가 안 될 용어가 한가득이라 주를 달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글이 지저분해 진 점은 양해 바란다.


p.s.2 번역이 어색한 건 양해바란다. 개인적으로 영어실력이 그렇게 좋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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